왜 리얼비즌에서 일하나요?

부제 | 좀 더 다양한 HOW가 주어지는 미래

 

나는 내 방식대로 살기로 했다

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구쳤는지 모릅니다. 그날 따라 머리가 잘 됐고,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고, 사연이 재밌는 데다, 웃음소리도 우렁찼습니다.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데 폐부를 찌르는 바람이 차갑더라고요. 뼛속 깊이 시린 기운에 몸을 떨고 나니 정말이지 살아있다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올해 나는 일주일에 3일만 일할 거야!”

이 글을 쓰는 저는 2019년 한 해, 주 3일 일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게시글 하나 없지만, 소개는 간지나고 싶어

 

“3일 일하고 4일 살아요”

실은 좀 어폐가 있습니다. 3일’만’ 일하는 건 아니거든요. 남은 4일은 친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굴리며,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임금을 받고 노동하는 것은 단 3일 이니 ‘3일 일한다’ 라고 주장해봅니다.

수저가 빛난다거나, 뛰어난 스펙이라거나, 대단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위질 잘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법학도에게 주5일 나인 투 식스는 여지 없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때는 2018년 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키는 일이나 따박따박하던 저는, 인생이 버거워 돌아버릴쯤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버튼을 누른 건지, 프로젝트가 채 윤곽조차 잡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장 문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저금해둔 돈을 축내가며 프로젝트를 돌리길 6개월. 그래도 벌어 먹고는 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다시 채용공고를 둘러보는데, 전에 없던 의문이 드는 겁니다. “내가 ‘진짜’ 돌아가야 하나?”

비록 큰 수익이 나지 않는 프로젝트였지만, 내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하며 일궈내는 무언가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는 ‘살아내고’ 싶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따져보았습니다. 한 달을 적정히 살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얼마나 일해야 할까. 계산기 두들겨보니 답이 나오더군요. 그 답을 들고 신나게 떠들고 다녔습니다.

“저에게 3일짜리 일거리를 주세요!”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나가며 일 달란 소리를 했습니다. 3일 일하고 4일 살기를 공표하며 더 많은 월급 대신, 내 시간을 재편할 권리를 손에 넣었다고 말했습니다. ‘너답지 않다’는 말은 칭찬 같았고, ‘그러다 말겠지’ 라는 말에는 사기를 불태웠습니다. 개중 가장 마음에 드는 표현은 ‘또라이’ 였습니다.

와중에 친구 하나가 글을 써두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너의 1년을 어디에 잘 저장해두라면서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인터넷 세상에 발을 들였습니다. 자, 글을 써야지. 마음 먹고 검색부터 했는데…

세상 ‘또라이’ 다 어디 갔나 했더니 거기에 다 있더라고요.

 

교보문고에서 ‘퇴사’를 검색해보았다

 

분명 다양하게 살라고 배웠거든요

참 재밌는 세상입니다. 12년 이상을 교육 받고 스펙 쌓아 괜찮은 명찰을 걸자마자 ‘퇴사하고 싶다’고 말하는 현실이니까요. 서점이며 커뮤니티며 SNS며 유튜브며… 퇴사 관련 컨텐츠는 인기를 끌다 못 해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트랜드의 원인을 ‘배움과 실천 사이의 괴리’에서 찾고자 합니다. 분명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삶이 있다’고 배웠는데, 본보기라고 들이밀어졌던 것들은 하나 같이 곧은 일직선의 길이었으니까요.

덕분에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구조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달리기의 반환점을 찍듯 되돌아 나가길 염원하죠. 더는 아니다, 직감하는 순간 발을 빼고 싶지만, 한 질문이 발목을 잡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다양할 것인가. 사회는 우리에게 다양하라 말했지만, 정작 우리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알지 못 했습니다. 다양하고자 하는 소수는 각자의 구조 속에 소외되어 있었고요.

더는 홀로 소외되지 않도록

그렇기에 기술의 발전은 축복이나 다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으니까요. 우리는 넷상에서 자유자재로 나 하나 쌓을 공간을 만들 수 있고, 내게 방문한 누군가와 가깝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제가 ‘또라이’들을 발견하였듯 말이죠.

N잡러라는 말을 알게 되고,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훔쳐보고, 내 정체성은 프리랜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올해의 다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는 기분이었습니다. 겨우 텍스트 몇 자가 뭐길래. 어떤 느슨한 연대. 동질감이란 게 그렇게 사람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리얼비즌은 그렇게 다르게-나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미래를 꿈꾼다고, 처음 회사를 방문했을 때 대표님은 말했습니다. ‘allius’라는 막 나온 따끈따끈한 이름과 ‘연결’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덧붙였던 설명이 오래토록 기억에 남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가도록 자극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그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일한다면, 3일 일하고 4일 살기가 아니라, 7일을 전부 살 수도 있겠다.’

그래서 리얼비즌에서 일합니다. 리얼비즌이 만드는 allius가 저에게 필요한 서비스니까요. 정보가 산재한 포털의 검색창을 잡고 씨름하지 않아도, ‘나다운 일’을 고민하는, 좀 더 스스로를 쌓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둘 수 있으니까요. 다양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방식을 모아 놓은 책갈피. 제가 생각하는 allius는 ‘좋은 책갈피’거든요.

그래서 나의 다짐이 더는 외롭지 않기를. 다양하고자 하는 짓거리들이 미래로 이어지기를. ‘나다움’으로 이어지기를. 우리의 모든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를.

제가 리얼비즌에서 일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살아내지 말고 살아가요, 우리.

 

나의 고민에서 우리의 고민으로

리얼비즌에서 일한 지 이제 반 년이 지났습니다. 점점 ‘나의 일’에 불과했던 고민이 ‘우리의 일’에 대한 고민으로 몸집을 부풀려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진정 다양한 우리를 꿈꾼다면, 다양할 수 있는 방식들을 우리가 알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리고 또 직접 해나가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allius blog를 통해 우리 보다 딱 한 발짝 앞서 자신만의 방식을 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한 발 앞서 자신의 길을 걸었던 그들의 한 발 앞선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폭신한 쇼파에 앉아 열심히 고뇌만 하던 당신이 느긋한 엉덩이에 불편함을 느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다가오는 미래, 주도적으로 살고자 하는 당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