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름 짓다 | ‘자발적 마감노동자’ 최혜진

‘자발적 마감노동자’ 최혜진 인터뷰


K E Y W O R D
#자발적  #마감  #노동자
 

6번째 책을 내며, 최혜진은 조금 무뎌지는 기분이라 말했다. 소속 없이 오로지 콘텐츠로만 승부를 보았던 ‘첫 책’의 감격은 다섯 번의 반복을 거치며 조금은 일상적인 감정으로 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것은 이름 석 자 앞에 붙은 소개의 말. 단 여덟 글자. 밀도 있게 담아낸 진심.

‘자발적 마감노동자’ 최혜진에게 ‘이름’에 대해 물었다.

‘자발적 마감노동자’라는 이름
6권의 책을 출간하는 동안 한결같이 자발적 마감 노동자라는 문구로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자발적 마감 노동자로 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0년 동안 월간 패션지를 만드는 회사에서 월급 노동자로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2013년에 퇴사하고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3년간 살았어요. 해외는 개인적인 계기로 간 거예요. 지금의 남편과 당시에 장거리 연애 중이었는데, ‘이참에 해외를 경험해보고 싶다라는 열망을 실현하고자 갔어요.

처음으로 월급을 받지 않는 생활이 시작되고 엄청난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10년 내내 기다렸거든요, 그 시간을! ‘내 안에 무엇이 있을까? 직장인이 아닌 삶이 가능할까?’ 고민을 해왔건만 실제로 그 시간이 왔을 때 생각만큼 행복하지도, 기쁘지도, 진취적으로 움직이지도 않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누군가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해주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거든요. 시간의 자유가 극단적으로 주어지니 오히려 멘붕에 빠졌지요.

그때부터 시간의 주도권을 찾아오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2013년 가을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블로그는 자기소개를 써야 하잖아요? “소속된 회사 이름도 없고, 누가 나에게 일도 의뢰하지 않는데 나를 에디터라고 할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조직의 이름, 세상이 정한 직무의 이름과 상관없이 진짜 나를 표현하는 말은 뭘까?” 고민 끝에 지은 것이 자발적 마감 노동자‘예요.
 
 
자발적 마감 노동자에는 직업을 나타내는 명사도특정한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도 없습니다. 대신 ‘노동한다’는 말을 수식처럼 사용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자발적 마감 노동자’라 지은 의도가 궁금합니다.

자발적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 상당히 고통스러워요. 특히 제가 다녔던 회사는 노동 강도로 악명 높은 곳이었어요. 사람을 쥐어짜면서, 후려치면서 일을 시켰지요. 그런데도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만드는 콘텐츠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거기서 극단적인 노동 강도도 견딜만한 힘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자발성이 사라지는 순간 회사는 지옥으로 바뀌거든요? 그럼 퇴사를 하게 되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자발성을 잃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았고, 스스로의 자발성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자발적이라는 말이 중요했어요.
 
마감 마감 기일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내 만족을 위해 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마감은 누군가에게 정해진 날짜에 적절한 맥락으로 보내겠다는 약속이니까요.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한 없이, 한 가지에 집중하며 골방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을 선택한 거죠. 같은 창작이라고 해도 남에게 보여줄 일이라는 전제를 갖고 가니까요. 마감은 그런 상징이에요.
 
노동 | 노동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노동자라는 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예요. 글쓰기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 빠질 수 있는 모순 중 하나가 자발성을 중시한 나머지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개념을 잃어버리는 거거든요.
유독 열정페이가 통하는 업종이 있잖아요? 잡지도 대표적이지요. ‘네가 좋아서 하잖아. 너한테 기회 주는 거니까 그냥 해!’ 이런 제안은 노동자로서 자의식과 권리가 깨어 있다면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데, 업계 전반적으로 그런 의식이 옅었어요.
창작을 둘러싼 낭만이 있어서 그래요. 이 낭만 때문에 자신의 본질을 잃을 때가 있는데, 그러지 말자고 다짐한 거죠. 나는 그런 헛된 환상에 빠지지 않고, 노동자라는 자각을 잘하고 살자. 글을 잘 쓰고 싶은 것도 결국, 내 글을 노동으로 세상에 내보여서 먹고 살고 싶다는 뜻이니까요.


주목할 점은 혜진님이 그 이름대로 살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자발적 마감노동자라는 소개를 내걸었을 때는 아무도 안 알아줬어요. 그게 뭐, 혼자 선언한 거였지요.
 
 
어떤 경험이 혜진님을 자발적 마감노동자로 살아가도록 하였나요?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블로그에 쓰는 글은 누가 시켜서 쓰지 않고 제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잖아요? 그래서 무슨 메세지를 만들어내는데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지를 본격적으로 고민했어요. 이렇게 만든 메세지 하나하나가 꼭지 기획으로 바뀌었고, 연재가 생겼고, 책으로 출간되었지요.

가장 결정적인 경험은 첫 책의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예요. 이게 나 혼자 하는 게 아닌가 보네. 누가 보네!’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상당히 많은 제안을 받았고, 출간까지 큰 어려움도 없었어요.
첫 책의 판매가 나쁘지 않았던 것도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일단 내가 누구 흉내내지 않고 내 색깔대로 정성을 들이면 통하긴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렇게 누구도 흉내내지 않고 써내려간 최혜진의 글에 어떤 감상이 달리던가요?
 
따뜻한데 뼈 때린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어요. 정서적인 공감이 분명히 있는데 두루뭉술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지는 않는 글이라고요. (웃음)


자발적 마감노동자로서 최혜진은 2013년부터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왔다주된 글감은 미술 작품미술관과 같은 시각 예술의 세계다최근에 발간한 <우리 각자의 미술관>은 미술을 감상할 때 무언의 권위에 짓눌려 스스로의 감정과 느낌을 말하길 주저하는 이들이 더는 없길 바라며, 그림에게 묻고 답하는 감상법을 공유하고자 써내렸다.

에필로그를 닫는 말이 무척이나 그다웠다. ‘이 한 마디가 간절히 하고 싶어 이 책을 썼습니다.’

통속적인 글쓰기, 써대는 훈련
자발적 마감 노동자로 스스로를 인정하기까지 가장 끈질긴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내가 이걸 취미로 하는 거야? 일로 하는 거야?’ 하는 고민이요. 그 고민은 책을 4권 정도 낼 때까지 쫓아왔네요.

저는 에디터라는 직업적 자아를 갖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 괴로워 재충전이 필요할 때 탈출하는 공간이 미술관, 그림책 같은 시각 예술의 세계였어요. 그런데, 직업적 자아가 잠시 사라졌을 때, 시각 예술로 글쓰기를 풀어버렸잖아요? 일의 범위가 커져 버린 거지요. 전에는 취미였던 것이 일의 범위에 들어와 버렸으니까요.
 
 
흔히 말하는 덕업일치‘ 네요.
 
그렇죠. ‘덕업일치가 매우 행복했지만 어느 시점이 되니까 도망갈 곳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재충전도 필요하고 마음 놓고 즐길 것도 있어야 하는데, 모든 것을 일로 만들어버렸으니까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슬럼프가 왔어요.
 
 
슬럼프는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결국 제가 결단하기 나름이더라고요. ‘돈과 아예 상관없는 영역으로 남겨두던가, 아니면 제대로 일로 만들던가.’ 갈림길에 섰을 때 제대로 하자고 마음 먹은 거지요.
 
 
재충전하는 시간에 대한 고민도 해결되었나요?
 
아니요. 여전히 그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제대로 하자고 결심을 하니까 더 바빠졌잖아요! 여전히 개인적으로 재충전할 시간을 잘 확보하지 못해요. 일과 휴식 사이의 밸런스를 잘 못 맞추는 느낌?
나 왜 이렇게 일만 하는 거 같지?’ 라는 고민을 자주 하거든요? 그런데 이 고민도 몇 년 하다 보니 답이 없더라고요. 그냥 내가 이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있어요, 점점.

사실 저는 일을 하는 게 놀이에 가까워서 일하는 시간이 그렇게 괴롭지 않거든요? 억지로 하는 일이 없어요. 회사 일을 포함해 제가 하는 모든 일이요. 자발성이 다 지켜지고 있어서 일이 사실 제일 재미있어요.
 
 
일이 가장 재밌다니… 놀랍습니다. 혜진님이 느끼는 재미의 정체가 궁금해지네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재미는 정확한 표현으로 꺼내는 순간의 쾌감이요. ‘맞아! 이 말 하고 싶었어!’ 하며 느끼는 재미가 있어요.

또 ‘소통이 되는 구나!’ 하는 쾌감이요. 그래서 독자들의 피드백이 너무나 소중해요. 강연장과 같이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저에게 해주시는 질문은 물론, 표정과 눈빛과 같은 비언어적인 표현으로도 굉장한 교감이 오가요. 거기서 만족감을 느껴요.
 

“통속적이라는 말이  ‘세속과 통한다는 뜻이잖아요?
세속과 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요?”


창작의 고통은 없으신가요?
 
고통 있지요. 누구나 있지요그런데 엄청나게 써대는기간을 10년이나 있었잖아요? 무척 많은 양의 원고를, 좋아하는 주제든 싫어하는 주제든 인터뷰이를 사랑하든 미워하든 일단 써야 했어요. 그렇게 써대는훈련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당시에는 너무 괴로워하면서 했는데 몸에 배어버린 거죠.

그래서 어떤 콘텐츠의 목적에 동의가 되고, 할 필요가 있는 일이라고 결심이 되고 일정이 나오면 그것에 저를 맞추는 게 괴롭지는 않아요. 훈련되어있으니까요. 직업적으로 훈련할 기회가 없는 분들에게는 이것이 상당히 괴로운 것이라고 들었어요.
 
 
(! 괴롭습니다!) 직업적으로 훈련할 기회가 없는 사람이 써대고 싶다면어떤 훈련을 하는 게 좋을까요?
 
개인 채널이라도 좋으니 , , 금에 제가 글을 올립니다.’ 하고 독자들에게 공언해버리세요. 내 컨디션이 어떻든, 주제가 어떻든 간에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내면서 써댈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지요.
 
 
혼자 쓰는 것보다 독자가 있는 글을 쓰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들리네요.
 
일기도 당연히 도움이 되어요! 사실 자신의 느낌과 감정이나 생각을 외연화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는 거잖아요? 꺼내는 작업도 익숙지 않은 분들에게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외연화한다는 측면에서 일기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정말 글쓰기를 훈련하고 싶다면, 타인에게 공개하는 글을 쓰는 쪽이 훨씬 성장할 가능성이 커요. 왜냐하면, 글이라는 게 결국 소통 욕구 때문에 쓰는 거잖아요? 소통은 혼자 하지 않고 누군가를 상정해놓고 하는 것이고요이때 나의 의도가 타인에게 다르게 가닿을 수 있음을 염두해둔다면 더 사려깊고 설득력 있게 글을 쓸 수 있지요. 글은 수용자의 맥락에 맞춰서 다 다르게 수용되니까요.
 
 
글을 쓴다고 하면 아티스트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혜진님은 철저히 대중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듯 해요.
 
작가로서 매체들과 만날 때 통속적이라는 단어를 왜 흉처럼 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해요. 왜냐하면 통속적이라는 말이 세속과 통한다는 뜻이잖아요? 세속과 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요?

그래서 저는 문장의 미학성 보다 소통가능성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해요. 문장을 어떻게 꾸밀지 보다 글의 구성이나, 배치. 메세지의 전략을 훨씬 많이 고민합니다.
 

‘자발적 마감 노동자’ 이외의 최혜진
그러고 보면 지금은 자발적 마감 노동자이외에도 한 조직의 콘텐츠 경험 설계자라 불러드릴 수 있겠네요지금의 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2016년부터 2019년 초까지 편집장으로 일했던 회사에 다시 입사한 거예요. 새로운 일을 만들어보려고요. ‘콘텐츠 경험 설계자’ 라는 이름도 직접 지은 거예요.

제가 잠시 떠나있는 동안 회사가 급성장해서 조직원이 두 배로 늘었어요. 그러면서 작은 규모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문제가 되곤 했죠. 좋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협업의 프로세스가 미흡해 아쉬운 낭비가 생기는 것이 보였어요. 원래 다녔던 회사니까 밖에 있어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정리정돈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선택했어요협업을 잘할 수 있는 구조를 세팅하고 이 사람들과 안 해봤던 도전을 해보면 신박한것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어요. 지금은 인터널 브랜딩을 통해 준비하는 기간이고요.
 

인터널 브랜딩은 콘텐츠 경험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요?

인터널 브랜딩을 콘텐츠 경험으로 풀어내는 중이에요. 예를 들어 구성원들에게 140개 항목에 달하는 설문조사를 받고, 그로부터 인사이트를 만들어 보고서를 회람해요. 이런 산출물 하나하나가 사실 다 콘텐츠예요. 이런 경험을 어떻게 하면 가장 기분 좋게, 설득력 있게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있고요. 단순히 미디어에 글을 쓰는 것만 콘텐츠가 아니니까요.
 
 
그러게요. ‘콘텐츠라는 말만 들으면 외부를 향해 전달하는 메시지의 느낌이 강한데, 내부 구성원에게 집중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140개 항목의 설문지라니…!

인터널 브랜딩 힘들어요. (웃음) 내부구성원이 가장 어렵거든요.

핵심은 대표님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하는 거예요. 일관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대표님의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것 또한 프로젝트의 일환이에요. 그리고 그 메시지를 내부구성원들이 가장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요. ‘와 나도 저쪽으로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하니까요.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해 상상하기

에디터로 시작해, 블로그와 브런치 작가를 거쳐, 조직의 HR 영역까지 포괄하는 CX까지. 굉장히 다양한 영역을 커버하고 계십니다. 혜진님의 커리어 패스는 의도하신건지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커리어 패스를 이렇게 가겠다하는 설계도 없었구요.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시기 시기마다 당장 이슈되는 것만 했더니 이렇게 되었네요.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요?
 
저는 제 모든 일을 통하는 맥락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에디터는 취재원에 대한 이해력과 이 사람이 이럴 거 같아!’ 하는 상상력을 가져야 하죠. 특히 상상력이 중요해요.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가지는 것 말이에요. 작가로서도 독자라면 이 메세지가 거북하진 않을까? 반발심이 들지 않을까?’ 상상하며 글을 쓰고 있고요.

인터널 브랜딩을 하면서도 상상하는 거예요. ‘한 구성원이 이런 성향인데 평소에 이런 말도 많이 했고, 또 이런 모습을 보여줘 왔다면,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대표님의 메시지를 수용할 때 이런 충돌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을 말이에요. 그래서 가장 충돌이 덜 하게, 부드럽게, 기분 좋게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상상하고 실현해요.

결국,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상상하는 것이 하도 훈련이 되어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상상하는 것도 의도적으로 훈련하신 걸까요?

원래 성향이 호기심이 많았고, 창작자들을 좋아하긴 했어요. 창작자가 어쩌다가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를 알아보기를 좋아했고요.

그렇지만 역시 에디터 일을 하면서 많이 개발되었어요. 에디터는 타인을 미친 듯이 많이 만나는 직업이에요. 한 달에 최소 10개의 꼭지를 써야 했어요. 한 꼭지가 10페이지, 12페이지짜리도 있었고, 하나의 꼭지에 취재원이 20, 30명씩 들어갈 때도 있었어요. 그럼 한 달에 만나는 인원이 최소라도 20, 30명이 되는 거예요. 갑자기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무언가를 얻어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부딪히면서 알게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경험 덕분에 사람에 대한 통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에디터 일을 할 때 인터뷰한 사람만 추렸더니 1000명이 넘더라고요! 그것도 에디터 할 때만요.


자발적 마감노동자‘ 최혜진은 한 조직의 콘텐츠 경험 설계자이기도 했고 ‘1000명에게 질문을 건낸 인터뷰어‘이기도 했다. 스물 네 살에 반 고흐의 무덤을 찾은 이래 화가들의 무덤여행자로서 그림과 마주하는 한편, 살림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고양이의 반려인간‘으로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혜진은 사람을 상상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을 상상하는 힘이 이끄는 방향으로 걸어와보니 지금의 길을 가고 있었다.

먼저 ‘나의 편’이 되어줄 것
그다음에는 ‘내 안의 비평가’를 끄집어낼 것
앞으로 최혜진은 어디로 갈까요?
 
저도 제가 앞으로 뭘 할지 모르겠어요. 전략 없이 파도가 오면 올라가고 내려가면 내려갔어요. 그렇다고 줏대 없이 아무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기존에 해왔던 히스토리에서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나갈 거예요. 방식은 잘 모르지만 어떤 제안을 받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 같아요. 

중요한 건, 시각 예술 분야에 대한 글쓰기를 계속 해나갈 거라는 거예요. 그 외의 방향성은 없어요.
 
 
스스로 호명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해요. 내 안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일단은 믿어야 하는데, 믿는 게 상당히 어려워요. 저도 믿지 못했던 기간이 길었거든요.
내가 전문가도 아닌데 이런 거 해도 되나? 에디터가 세상에 몇만 명인데!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박사가 몇만 명인데 내가 프랑스 그림책 작가를 인터뷰해도 돼?’ 이런 식으로 자문을 많이 했어요.

이때 질문이 자신을 우선 믿고, 더 잘 찾아내기 위한 거라면 너무 좋은 방향이죠. 그런데 자신을 주저앉히는 방향으로 쓰는 경우도 대단히 많거든요. 스스로에 대한 자격 검증을 누구보다도 먼저 하는 거죠. 그러면 아무리 누가 밖에서 그 사람의 매력적인 무언가를 끄집어내려 해도 안 나오는 거 같아요. 스스로 의심하는 생각을 버리시라고 제일 먼저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전적으로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면, 마음을 정비한 후에는 ‘내 안의 비평가를 끄집어내야 해요. 세상 안에서 내 위치와 맥락을 파악하는 거죠. 모든 일을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나의 주제 파악과 맥락 파악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해요.

에디터가 세상에 이렇게 많은데그림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그 사람들하고 나의 차별점이 뭐지?’ 이건 전략을 세우는 질문이지요포지셔닝을 확실히 하는 거예요. ‘나는 에디터 중에서도 이런 에디터야.’ 스스로 일관성을 갖고 만들어낼 개성을 찾아내는 것이게 바로 포지셔닝이라고 생각해요.
 
먼저 나의 편이 되어줄 것. 그다음에는 ‘내 안의 비평가를 끄집어낼 것.
이렇게 두 가지 나를 다른 타이밍에 꺼내야 한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최혜진의 일관성은 무엇인가요?

“예술서 분야에서 대중성 있는 글쓰기를 하며 ‘묻고 답하기, 소통, 교감’을 화두로 두는 저자.” 
이게 작가로서 저의 일관성입니다.

에디터로서는 “시키는 일만 하지 않는다!”
일을 만드는 에디터. 이게 저의 일관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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